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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성회 역사
 
1. 오순절 신학의 기원

19세기 영국의 에드워드 어빙의 부흥운동
현대 오순절 운동의 선구자들로는 적어도 19세기의 두 가지 부흥운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그 첫째 부흥 운동은 1830년의 영국에서 에드워드 어빙(Edward Irving)의 사역을 통해 일어났으며, 둘째 부흥 운동은 1860년의 인도 남단에서 플리머스 동포(Plymouth Brethren) 신학의 영향을 받아 아로올라펜(J. C. Aroolapen)이라는 인도(印度) 성직자의 지도 아래 일어나게 되었다. 이 두 가지의 사건에 대한 보고서에는 방언과 예언을 말하는 것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은사가 사도시대와 함께 필연적으로 사라지게 되었다는 일부의 신념은 벤자민 워필드(Benjamin B. Warfield)가 그의 저서 "Counterfeit Miracles"(1918)에서 "성령의 영감을 받아 객관적으로 기록된 성경의 권위가 성령에 대한 주관적 개념을 가르치는 사람들로 인해 손상되었다."라는 말로 표명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최근에 들어 개신교권에서 점차 그 기반을 잃고 있는 실정이다.

영국에서의 웨슬리 부흥운동
17세기 말과 18세기에 유럽과 북미에서의 불어닥친 부흥운동의 영향으로 칼빈주의자와 루터교파 그리고 아르미니우스파의 설교자들은 기독교인의 삶에 있어서 특별히 회개와 경건을 강조하였다. 현대 오순절운동은 이 시기에 일어난 영적운동의 연장선상(延長線上)에 있다. 특히 감리교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존 웨슬리(John Wesley)와 그의 동역자인 존 플레처(John Fletcher)가 가르친 '그리스도인의 완전함'(Christian Perfection)에 대한 교리에 주목해야 한다. 웨슬리는 1760년 그의 저서 「그리스도인의 완전함에 관한 소고(A Short Account of Christian Perfection)」에서 그의 제자들이 삶 속에서 '영적인 새로운 차원'을 추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은혜의 역사는 회개와는 별도의 '이차적(二次的)'인 것으로서 죄의 행위를 일으키는 도덕적 연약함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해 준다고 하였다.

미국에서의 성결운동
그의 가르침은 미국으로 확산되어 성결운동(聖潔運動)(Holiness Movement)이 성장하도록 영향을 끼쳤다. 성화된 삶에 초점을 맞추는 동시에 성경에서 유래된 오순절의 모습들, 예를 들면 '성령을 부어주심', '성령세례', '불의 혀'라는 단어가 성결문학과 찬송의 주제가 되었다. 감리교인으로서 웨슬리 진영의 성결운동의 최고지도자들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피비 파머(Phoebe Palmer)는 '성결에로의 인도(Guide to Holiness)'를 편집하였고, '아버지의 약속(The Promise of the Father)'등과 같은 책을 1859년에 저술하였다. 또 다른 저명한 작가였던 윌리엄 아서(William Arthur)는 1856년에 베스트셀러 「불의 혀(Tongue of Fire)」를 남기게 되었다. '두번째 축복(second blessing)' 즉 성령세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留)하라"(눅 24:49)는 말씀대로 '새로운 능력을 대망(待望)하며' 그것을 '받을 때까지 기도해야 하며' 그것을 '받지 못하면 완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없다'고 믿는다. 성령세례를 받으면 본래적으로 갖고 태어난 죄의 권세를 부수며, 성령충만한 삶으로 인도해 준다. 구약의 요엘 선지자는 하나님의 영이 부어질 때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하게 될'(욜 2:28)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챨스 피니와 드와이트 무디 그리고 R. A. 토레이
은혜의 이차적(二次的)인 역사에 대한 믿음이 감리교권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찰스 피니(Charles G. Finney)는 "성령세례가 그리스도인의 완전함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권능의 부여"라고 믿었다. 비록 역사적으로 개혁교회가 성령세례를 개종과 동일시(同一視) 해왔다 하더라도 그 전통 속에서 몇몇 부흥운동가들 즉 드와이트 무디(Dwight L. Moody)나 토레이(R. A. Torrey)같은 사람들은 신자들에게 권능을 부여해 주는 이런 이차적(二次的)인 하나님의 역사(役事)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다.

심프슨이 보완한 성화론은 하나님의 성회 신학의 기초
한편, 이러한 권능이 부여된다 하더라도, 성화는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는데 그 중심인물로는 장로교인이었던 심프슨(A. B. Simpson)을 들 수 있다. 그는 '그리스도인과 선교사 연맹'(Christian and Missionary Alliance)'을 창설하였고, 성령세례를 강조하였으며, 하나님의 성회 신학의 초석을 놓았던 인물이 되었다.

▶<그리스도인과 선교사 연맹 창설자 A.B.심프슨>
그는 오순절 성령세례를 재현해야 한다고 주장하여 오순절 신학의 초석을 놓았던 사람이다




영국의 케직사경회
1875년에 영국에서 시작된 케직(Keswick)사경회(査經會)도 미국의 오순절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케직의 교사들은 성령세례야말로 '성령충만'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지속적인 승리의 삶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성령세례가 '무죄한 완전'을 가져온다는 사상을 웨슬리주의자 보다 더 선호하였다.

독일에서의 치유운동
19세기 들어 의학이 점차 발전하였지만 심각한 질병에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다. 당시 교회는 육체적인 치유를 가져오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권능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지 않았으며 육체적 치유를 주장하는 교회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19세기에 독일에서 병자를 위한 기도를 부각시킨 사람들이 있는데 도로테아 트루델(Dorothea Trudel)과 요한 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Johann Christoph Blumhardt)와 오토 슈토크마이어(Otto Stockmayer)가 미국에서 더 관심을 끌게 되었다. 죄로부터의 즉각적인 정화 또는 영적인 권능의 부여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있던 부흥사들에 의해 믿음을 통한 직접적인 치유에 대한 긍정적인 환경이 조성되었다.

미국에서의 치유운동의 확산
성령세례는 많은 신자들에게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가졌던 영적인 관계를 완전히 회복시켜 주었다.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 한층 더 높은 성결의 삶은 타락이 갖다주는 물리적·정신적 영향을 없애줌으로써 신자들로 하여금 질병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과 권능을 갖게 해 주었다. 찰스 컬리스(Charles C. Cullis)와 심슨(A. B. Simpson), 고든(A. J. Gordon)과 케리 주드 몽고메리(Carrie Judd Montgomery), 마리아 우드워드 이터(Maria B. Woodworth Etter)와 존 알렉산더 도뷔(John Alexander Dowie)와 같은 치유사역의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믿음의 근거를 신약성경의 치유에 대한 약속은 물론 이사야서 53장 4절에서 5절 말씀에다 두었다. 그리스도는 '죄를 담당(sin bearer)'하실 뿐만 아니라 '질병도 담당(sickness bearer)'하셨으므로 하나님의 약속을(출 15 : 26) 믿으며 사는 사람들은 더 이상 의학적인 도움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만일 그들이 의학의 도움을 요구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신앙부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순절 성령운동의 방향 정립
미국을 휩쓸고 있던 '그리스도인의 완전성'을 추구하던 성결운동에 심프슨이 주창한 '점진적인 성화론'이 폭넓게 지지되면서 영적운동에 일대 방향전환이 왔는데 그것은 구령(救靈)을 향한 선교운동으로 나타났고 교회는 그같은 영적사업에 매진할 수 있는 강력한 에너지의 원천(源泉)인 '오순절 은사은동' 에 주력하게 되었다. 당시 대부분의 교회가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초대 교회와 함께 마감되어졌다고 가르친 반면에 오순절주의자들은 치유 및 방언 그리고 다른 은사들은 기독교인들에게 실현 가능한 일이라고 여겼다. 이제 오순절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불신앙 외에는 신약교회가 성결과 권능 속에서 재건되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하딘 어윈의 삼차적(三次的) 은혜와 불타오르는 사랑의 세례
그러나 1895년에 급진적인 웨슬리 성결운동의 설교자였던 벤자민 하딘 어윈(Benjamin Hardin Irwin)이 은혜의 세가지 역사에 대해 가르치기 시작하자 말썽의 소지가 드러나게 되었다. 어윈에게 있어서 이차적(二次的) 은혜는 성화를 일으키는 것이지만 세번째 은혜는 '불타오르는 사랑의 세례(baptism of burning love)'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성결운동의 주류측에서 이러한 '세 번째 은혜'에 대한 주장을 이단으로 정죄하게 되었고 "두 번째 은혜인가? 세 번째 은혜인가?"라는 격론이 일게 되었다. 그것의 진위(眞僞) 여부를 떠나서 어윈의 '세 번째 은혜'에 대한 견해는 오순절운동에 있어서 '기독교인의 봉사'라는 새로운 차원에 눈을 돌리도록 해준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하나님의 성회의 성립

1901년 1월 1일, 벧엘성서신학교의 새아침
1901년은 개신교사(改新敎史)를 일신(一新)하는 신기원의 해라 일컬을 수 있다. 당시 감리교 부흥사이었던 파함(Charles. F. Parham)목사가 1900년 10월에 칸사스주 토페카시에 벧엘성서신학교를 설립하여 40여명의 학생들에게 그리스도는 구세주이며 신유의 주님이신 것을 가르쳤다. 이 학교의 특징은 교재를 오직 성경만으로 사용하였는데 때마침 그들은 사도행전을 공부하고 있었다.
그 해 마지막 무렵에 교장인 파함은 인근에 있는 도시로 천막부흥회를 인도하기 위하여 3일간 학교를 떠나면서 학생들에게 “성령세례의 증거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작성케 하였다.

▶ 찰스F.파함(1873-1929)파함은 '사도적신앙 (THE APOSTOLIC FAITH)'이라는 강력한 복음전도 운동을 이끌었다.

그런데 교장이 학교에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학생들은 이 연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성령세례의 성경적 증거가 방언'이라는 결론이었다. 물론 교회사를 보면 방언을 말했다는 기사가 없지는 않으나 그들은 다만 방언을 은사로만 인식하였을뿐 성령세례의 증거라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신학생들은 성령세례의 증거가 방언임을 굳게 믿고 3일간 밤낮을 쉬지 않고 성령세례를 구했으며 드디어 1901년 1월 1일 새벽 여명이 밝아올 무렵, 오즈맨(Agnes Ozman)이라는 여학생이 맨먼저 방언을 하게 되었다. 이어서 다른 신학생들도 성령을 받고자 하는 불타는 마음이 생겨 열심히 기도하던 중 한사람 한 사람 성령세례를 받고 방언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충동이 생겨 길거리로 뛰쳐나가 열심히 복음을 전하였고 학생들의 손으로 세 개의 새교회를 세우게 되었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성회의 효시(嚆矢)이며 20세기 성령운동의 시발인 것이다.

▶파함이 세운 벧엘성경학교가 들어있던 STONE'S MANSION(1900)이 학교 여학생 오즈맨이 1901년 새해 아침에 맨먼저 방언을 함으로써 현대 오순절운동의 도화선이 된다




아주사 거리 부흥운동
20세기 벽두에 성령 세례를 허락하신 것은 '말세에 늦은 비 성령을 부어 주시리라'는 예언이 적중한 것이니(욜 2:23), 초대교회에 이른 비가 내린 후 19세기까지는 별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가 20세기가 밝아오는 1월 1일 새벽에 성령의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이것이야말로 20세기가 늦은 비 성령의 시대이며 또한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시대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고 있다. 20세기 성령운동의 진원지 토페카시에서 발생한 이 불길은 들불처럼 퍼져나가 그 해에 칸사스, 오크라호마, 미조리, 텍사스주에 퍼지게 되었으며, 1906년에 캘리포니아주의 로스엔젤레스에서 강한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파함은 1905년에 휴스톤에 또 하나의 신학교를 설립하여 복음적인 전도자를 양성하였는데, 윌리암 셰이모어(William J. Seymour)가 성령세례를 받아 오순절적인 전도자로 전환되었으나 그가 속해있는 교단에서는 설교할 자격을 박탈당했다. 그러자 그는 어떤 굴레에 매여 복음을 바로 전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자유스러운 입장에서 복음 그대로를 설파함이 옳은 것이라 믿어 1906년 로스엔젤레스 아주사(Azuza)거리에서 부흥운동을 전개하였다. 이것이 저 유명한 1906년의 아주사의 성령운동이다.

이주사 거리 부흥운동을 일으킨 진원지(1905)



이 부흥회는 1주간이나 또는 1∼2개월에 끝나는 집회가 아니었으며, 7년간이나 계속된 새로운 차원의 부흥회였으니 이 집회는 어떤 프로그램도 없었으며 찬양이나 광고도 하지 않았고 폐회선언도 없었다.


씨무어는 1906년 부터 로스엔젤레스 이주사거리에서 무려 7년동안이나 계속된 오순절적인 부흥회를 인도하였다

다만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찬미하며 기도하고 설교하며 매일 밤낮 쉬지않고 모이고 또 모여 은혜를 받았다. 날마다 성령의 은사가 강하게 나타났고 그 결과 이 소문이 사방에 퍼져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여 성령을 받았으며, 그들은 다시 제 고장으로 돌아가서 성령운동을 일으켰다. 캘리포니아, 시카고, 캐나다, 뉴욕, 죠지아, 프로리다 등지에서 오순절운동이 속속 전개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무렵에 노르웨이, 스웨덴, 독일, 한국 등지에서도 성령의 강한 역사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평양에서 일어났던 1907년도의 부흥운동을 그 실례로 들 수 있겠다.

20세기 오순절 성령운동의 중핵(中核) 하나님의 성회의 탄생
말씀과 증인(Word and Witness)지(誌)의 편집인이었던 벨(E. N. Bell)목사는 1913년 12월 20일자 지면(誌面)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Church of God in Christ)들과 오순절적 성도의 총회 소집에 대한 광고를 게재하여 1914년 4월 2일부터 12일까지 알칸사스주 핫 스프링(Hot Spring)시에서 열릴 것을 알렸다. 그들이 총회를 개최하게 된 목적은 성령받은 오순절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연합하고 협력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반목·분열을 조장하는 행위를 완전히 배제하고 오직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전진을 위하여 협력하고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려 하였다(엡 4:3). 말씀과 증언지에 실렸던 하나님의 성회소집 공고는 다음과 같다.

  • 총회일시 : 1914년 4월 2일 - 12일
  • 장 소 : 알칸사스주의 핫 스프링(hot spring)
  • 회의성격 : 그리스도안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과 오순절적 성도들의 총회(convention)

    미하나님의 성회의 창립총회의 목적은 다음의 다섯 가지이었다.

    첫째, 분열과 불화를 피하기 위해 가르침과 설교의 어떤 표준을 설정할 필요성과 오순절 백성들이 여러 이름 아래서 일하는 것을 피하고 하나의 이름을 선택할 필요성이 있다.
    둘째, 하나님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어떤 관례를 제정하여야 할 필요성과 분열하는 대신 하나되고 세우는 일에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셋째, 해외선교의 필요성을 잘 이해하며 효과적인 해외선교의 의미와 방법을 연구하는데 전력을 쏟아야 한다.
    넷째, 교회재산의 보존과 교회 사업수행을 위한 각 주(State)와 전국적인 법률을 제정하여 오순절 역사의 다른 분열을 없애기 위해 하나의 이름으로 법인체를 설립할 것을 제의한다.
    다섯째,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 하신 주님의 지상명령(至上命令)을 수행하기 위해 교역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 설립과 문서출판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며 이러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


    1908년로즈웨 플라워 목사가 작성한 <사도신앙목록>



    1914년 4월 2일, 미국 20개 주에서 300명 이상의 대의원(Deligate)들이 알칸사스주의 핫 스프링에 모였다. 총회장소는 핫 스프링시의 중심가(Central Avenue) 200번지에 위치한 오래된 그랜드 오페라 하우스이었다. 그곳에는 미국의 20개주에서 모여온 총대들 뿐 아니라 해외에서 참석한 대표들도 있었다. 제일 연소한 사람은 18세인 랄프 리그스(Ralph Rigs)라는 청년이었는데, 그는 1953∼1959년까지 미하나님의 성회 총회장이 되어 교단 발전에 지대한 공을 남기게 된다.


    창립총회가 열렸던 핫 스프링스 오페라 하우스(1914)



    창립총회의 대의원 명부에는 남아프리카의 요하네스버그(Johnnesburg)에서 온 레이크(John. G. Lake)라는 오순절 신앙인의 이름도 기재되어 있으며, 두 사람의 주요한 잡지사의 편집인도 참석하였는데「말씀과 증언」(Word and Witness, 알칸사스주의 Malbarn에서 발행된 잡지)의 편집인 벨(E. N. Bell)목사와 「크리스챤 복음지」(Christian Evangel, 인디아나주의 Plainfield에서 발행된 잡지)의 편집인인 플라워(J. R. Flower)목사 등이다. 또한 후에(1915∼1919, 1923∼1925) 총회장이 되어 교단발전에 크게 기여한 웰취(J. W. Welch, 칸사스주의 Baxter Springs교회의 담임)목사와 1925∼1929년까지 총회장을 지낸 갯슨(W. T. Gatson, 오클라호마교회의 목사)도 참석했으며 멀리 이집트에서 온 크러치(J. Crouch)목사도 있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성회는 탄생 때부터 국제적인 규모로 출발하였다. 총회 개회설교는 핀슨(M. M. Pinson)목사가 하였는데 사도행전 15장을 본문으로 하여 교리적인 몇가지 문제와 칭의(Justification)에 대해 말씀을 증거하였다. 이어서 사흘동안 은혜받는 성회가 계속 되었으며 그 성회를 통해 성령충만 받은 성도들이 핫 스프링 시가지로 나가 질서정연하게 가두행렬(Parade)을 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미국의 하나님의 성회 총회는 총회가 개최되는 도시 전체를 축제의 장(場)으로 바꾸는 놀라운 사건이 된다. 사무총회는 4월 6일부터 시작되었는데 벨(E. N. Bell)목사가 임시의장으로 선출되었으며 플라워(J. R. Flower)가 임시서기로 선출되었다.

    그 창립총회의 중요한 결의사항은 다음과 같다.

    1. 교단 명칭을 하나님의 성회(The Assemblies of God)라 한다. 개교회 명칭은 ○○○ Assembly of God으로 부르기로 한다.
    2. 총회(The General Gouncil)는 회무를 처리하는 모임이고 정치제도는 회중적 합의제
    (Congregational Agreement)를 채택하여 개교회의 자율성을 중요시 한다.
    (즉 감독제도나 중앙집권제를 배제하고 개교회 중심제를 채택한 것이다)
    3. 총회본부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12명의 실행위원(Executive Presbytery)을 두기로 하고 이를
    선출한다.
    4. 총회장에는 벨(E. N. Bell)목사를 선출하고 총무에는 플라워(J. R. Flower)목사를 선출한다.
    5.「말씀과 증언」과 「오순절 복음」(Pentecostal Evangel)을 교단지(敎團誌)로 인준한다.
    6. 핀드레이에 있는 신학교를 교단 신학교로 인준했으며 벨목사와 플라워목사를 교수로 인준한다.


    창립총회에서 초대 실행위원으로 선출된 12명의 목사는 다음과 같다.
    1. E. N. Bell(아칸사주의 Malvern시)
    2. A. P. Collins(텍사스주의 Fort Worth시)
    3. R. L. Erickson(이리노이주 Chicago시)
    4. J. R. Flower(인디아나주 Indianapolis시)
    5. C. B. Fockler(위스컨신주 Milwaukee시)
    6. H. A. Goss(알칸스사주 Hot Springs시)
    7. D. W. Kerr(오하이오주 Cleveland시)
    8. T. K. Leonard(오하이오주 Findlay시)
    9. D. C. Opperman(텍사스주 Huston시)
    10. M. M. Pinson(아리조나주 Phoenix시)
    11. J. C. Sinclair(이리노이주 Chicago시)
    12. J. W. Welch(칸사스주 Baxter Springs시)

    교단 창설의 주요 멤버들과 그뒤로 대의원들



    이상의 열두 사람이 미(美)하나님의 성회 초창기의 중요 인물들이었으며 그들은 교단발전을 위해 크게 헌신한 충성스러운 주님의 일군들이었다.

 

하나님의 성회 한국총회 역사
 
제1부 하나님의 성회 한국총회의 태동(1974-1982)
  1. 한국 순복음의 세계 진출
  2. 미 하나님의 성회 한국지방회 결성 - 1974년  창설된 순복음 세계 선교회 미주연합회가 초석.
  3. 제1차 하나님의 성회 한국지방회 총회

    1982년 2월 11일-12일
    Springfield, MO 에서 57번째 지방회로.
    John Hurston목사 1년간 지방회장 서리.
제2부 발전하는 한국 지방 총회(1983-1986)
  1. 제2차 하나님의 성회 한국 지방총회

    1983년 3월 15-17일 순복음 웨스턴교회(L.A.) 에서 96명의 교역자 모임, 8명의 목사 임직.
    김기홍 목사 지방회장으로 선출,.

  2. 제3차 하나님의 성회 한국 지방총회

    1984년 3월 26-29일 뉴욕 순복음교회 헤브론  수양관에서 약 120명의 교역자 모임,
    17명의 목사 임직.

  3. 제4차 정기 지방총회

    1985년 1월 21-23일 Houston에서 약 120명이 모임,  김기홍 지방회장 유임
    '한국 지방총회'의 명칭을 '한국총회'로 개명 14명의 목사 임직.

  4. 제5차 정기총회

    1986년 2월 24-26일 Florida에서
    18명의 목사 임직식 거행
제3부 한국 총회의 시련(1987-1988)
  1. 제6차 정기총회

    1987년 2월 23-25일 San Bernardino, CA  C.C.C.수양관 149명 참석. 13명의 목사 임직. 
    김기홍 총회장이 재선됨.
    김기홍 총회장은 동년 7월 27-30일 Cape May의 가족수양회 때 사표를 제출(교단 분리) 함으로 부총회장 김남수 목사가  총회장으로 선정됨

    - 동년 12월 14일 나성에 신학교를 세우기로 함.

  2. 제 7차 정기총회

    1988년 2월 29일-3월 2일 포트랜드 중앙교회에서 139명의 교역자 참석. 15명의 목사 임직.
    김남수 총회장 재선.

    - 교역자 성지 순례(11월 9일부터 9박 11일 동안)
    - 총회회관 건립 위원회 구성
제4부 한국 총회의 안정기(1989-1995)
  1. 제8차 정기총회

    1989년 3월 6-8일 Pinecrest Christian Center(CA)에서 109명의 교역자 참석.
    7명의 목사 임직.

    - 회비 납부 교역자에게 생명보험 수혜의 혜택을 주기로 하다.

  2. 제9차 정기총회

    1990년 3월 19-22일 하나님의 성회 시카고 교회에서 116명의 교역자 참석.
    김명남 목사 총회장으로 선출.
    7명의 목사 임직.

    - 총회회관 구입 결정(Downey시)
    - 특별 선교 위원회 발족으로 해외선교사업 전개

  3. 제10차 정기총회

    1991년 4월 1-3일 순복음 워싱톤교회에서 106 명의 교역자 참석.
    13명의 목사 임직.

    - "우리는 이렇게 믿는다(Where we stand)" 번역 출간 (지난 20년간 미 본부총회에서 발표했던 교리적 선언을 모은 책자)

  4. 제11차 정기총회

    1992년 3월 16-18일 감사한인교회(L.A.)에서  개최.
    8명의 목사 임직.
    김기홍 목사 전임(full time) 총회장으로 선출.

    - 1992년 발생한 L.A.폭동으로 교단에 재정적 어려움을 겪게 되어 총회회관 유지 및 기타 사업에도 막대한 차질을 가져옴.

  5. 제12차 정기총회

    1993년 4월 19-21일 순복음 라스베가스 교회에서 108명의 교역자 참석.
    10명의 목사 임직.

    - 신학교 학위 인가 신청(가주 교육국에)

  6. 제13차 정기총회

    1994년 3월 14-16일 순복음 뉴욕교회.
    김남수 목사를 총회장으로 선출.
    16명의 목사 임직.

    - 김남수 총회장이 사표를 제출함에 따라 부총회장 김종기 목사가 제1차 실행위원회의에서 총회장으로 선임.
    - 교단 통합 추진(순복음 북미 총회와)

  7. 제14차 정기총회

    1995년 3월 13-15일 순복음 샌루이스 교회.
    168명의 교역자 참석. 10명의 목사 임직.
    김명남 목사 총회장으로 선출.

    - 북미 총회와의 통합 문제 거론
    - 총회회관을 처분하여 정리하기로 함
제5부 하나님의 성회 순복음 한국 총회의 통합(1996-1998)
  1. 제15차 정기총회(제1차 통합 총회)

    1996년 1월 17-20일 Florida의 Radisson Twin Tower Hotel에서 한국총회와 북미총회가 함께 통합총회를 개최.
    김남수 목사 통합 총회장으로 선출.
    22명의 목사 임직

    -  명칭: "하나님의 성회 순복음 한국총회"로

  2. 제16차 정기총회(제2차 통합 총회)

    1997년 4월 8-10일 순복음 뉴욕교회에서 개최.  23명의 목사 임직.
    조이식 목사 총회장으로 선출.

    - 목사 405명, 전도사 241명, 316개 교회
    - 불법 서신 배포 문제로 통합 총회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

  3. 제17차 정기총회(통합 3차)

    1998년 4월 21-23일 감사한인교회에서 180명의 교역자 참석.   14명의 목사 임직.
    함윤식 목사 총회장으로 선출.

    - 통합 총회의 분열   
제6부 다시 출발점에 서서(1999-현재)
  1. 제18차 정기총회(통합 4차)

    1999년 4월 19-22일 하/성 안디옥교회(Atlanta, GA)에서 개최.
    14명의 목사 임직.
    함윤식 총회장 재선.

    - 신학교 통합 (2000년 1월 AGETS로)

  2. 제19차 정기총회(통합 5차)

    2000년 4월 3-6일 달라스 순복음교회에서 257명의 교역자 참석.
    12명의 목사 임직.
    김도언 목사 총회장으로 선출.

    - '하나님의 성회 순복음 한국총회'를 해산하고 '하나님의 성회 한국총회' 설립

  3. 제20차 정기총회

    2001년 4월 23-26일 하/성 갈릴리교회에서 개최.  11명의 목사 임직

    - 하나님의 성회 한국총회 20년사 발간

  4. 제21차 정기총회

    2002년 4월 22-25일 순복음 라스베가스교회에서 182명의 교역자 참석.
    13명의 목사 임직.
    이재선 목사 총회장으로 선출.

  5. 제 22차 정기총회

    - 일부 회원들이 2002년 11월 미 본부총회에 한국총회의 지역적 분할 청원서를 제출
    - 2003년 1월 27-29일  하/성 시카고교회에서 긴급총회를 소집, 109명의 교역자 참석.

    4명의 목사 임직.

    - 분총회 문제 해결을 위한 5명의 위원 선임.

  6. 제23차 정기총회

    2004년 4월 26-29일  순복음 뉴욕교회에서 103명의 교역자 참석.   2명의 목사 임직.
    이우용 목사 총회장으로 선출

    - 분총회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룸
    - 중재위원 김남수 목사의 보고와 1년 후에 지역적으로 분할하는 안건을 투표에 붙였으나 부결.   

  7. 제24차 정기총회

    - 2005년 4월 25-28일 하와이 백향목교회  Honolulu, Hi.   148명의 교역자 참석(전체 참석자 240여명)

    6명의 목사 임직.

    - 준회원 제도 도입
    - 교역자 복지와 은퇴 연금 제도 마련 -

    이 일을 위해 월회비를 $70에서 $100로 인상하고, 그 중 $30을 적립하도록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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